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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

앞에서 본 바와 같이 김대건 신부는 1821년 8월 21일 솔뫼(현,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 116번지)에서 아버지 김제준(이냐시오)과 어머니 장흥 고씨(울술라) 사이에서 태어났다. 김대건 신부의 아명(兒名)이 재복(再福)이었던 점으로 보아 아마도 형이 하나 있었으나 어려서 죽어 족보에 오르지 못하지 않았나 추정된다. 김 신부의 족보명은 지식(芝植)이고 대건(大建)은 관명(官名)이며 세례명은 안드레아이다. 김대건 신부는 정해박해(1827년) 때 용인 골배마실로 피신할 때까지 이곳 솔뫼에서 성장하였다. 김 신부에게는 누이가 하나 있었고 난식(蘭植)이라는 보명을 가진 남동생이 하나 있었다.

김 신부의 9대 선조 의직(義直)이 충청도병마절제사(忠淸道兵馬節制使)였고 증조부 진후가 통정대부(通政大夫)였던 점으로 미루어 천주교에 입교하여 박해를 받기 전까지는 유복한 가정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1791년 신해박해 때부터 가세가 기울어 1814년 증조부 진후가 죽고나서 김 대건신부 직계는 패가한 것으로 족보상 나타나있다.

1827년 정해박해 때 7살난 김대건 신부는 조부 택현과 부친 제준을 따라 서울울 거쳐 경기도 용인 한덕골로 피신하였다. 그리고 유학을 가기 전 15세까지 그곳에서 조부 밑에서 한학을 공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