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의 사랑법
글 : 박완서 엘리사멧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부모 노릇을 해본 사람이라면 자식을 처음으로
이 세상에 맞아들였을 때의 떨림 중에서 앞으로
그 아이를 어떻게 부를까, 하는 작명의 어려움과 기쁨에 대해서도
한두 가지 정도는 특별한 기억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아직도 한자 이름을 많이 쓰는 우리의 관습 때문에
한자 실력이 얕은 젊은 부모들은 무거운 한자 사전과
며칠씩 씨름해가며 좋은 이름 찾기에 고심하기도 하지만,
처음부터 작명의 보람과 권리를
조부모 몫으로 떼어놓은 신세대들도 적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뜻을 함축시키기에는 한자만 못하나 듣기에 아름답고
뜻도 쉬운 우리말 이름도 늘어가는 추세인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작명소 또한 꾸준히 성업 중인 걸 보면 이름에다 포함시킬 수 있는
부모의 욕심 중에서 좋은 운명도 빼놓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가문에 따라 항렬자라는 것이 따로 정해져 있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이름자는 한 글자밖에 안 남게 되어
그 한 글자에다 온갖 정성과 기원을 다 기울였지만,
항렬자는커녕 성씨도 없는 노비들의 이름은 순 우리말로 된 게 많아았습니다.
마당쇠니 돌쇠니 개똥이니 딸그만이니 하는 이름이 그런 것들인데
천민이 아니더라도 이름이 천해야 오래 산다는 속설에 따라
그런 이름을 아명으로 부르는 집안도 드물게 많았습니다.
돌쇠가 튼튼하게만 자라주길 바라는 소망의 직설적 표현이라면
개똥이 같은 이름은 반어적 작명이라 하겠지요.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를 베드로,
즉 반석이라고 명명하신 장면은 마치 자식의 이름을 지을 때의
어버이 같은 자애와 소망과 함께 예수님다운
날카로운 통찰력까지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빛나는 장면입니다.
그때가 마침 베드로가 처음으로 예수님을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신앙고백을 한 직후라
모처럼 마음에 든 말을 한 제자가 신통해서
즉흥적으로 지어준 이름 같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어디 아부하는 말을 좋아할 분입니까?
그리고 왜 하필 반석이었겠습니까.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베드로는 우리네 보통 사람과 다름없이 겁이 많고,
상황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마음이 잘 흔들리는
약점투성이의 인간에 불과합니다.
실로 반석과는 얼토당토않습니다.
베드로가 그런 줄 알면서도 하필 반석이란 이름을 내리신 건
반석처럼 굳건하기를 바라시는 소망과 함께 약하디 약한
그의 인간성을 반어적으로 표현하신 것이 아닐까요?
무엇보다도 예수님은 베드로를 믿고 깊이 사랑하셨습니다.
베드로의 어느 면만을 보시거나 어떤 가능성을 내다보시고
그것만을 따로 떼어내서 사랑하신 게 아니라
약점까지를 포함한 있는 그대로의 베드로를 사랑하셨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베드로란 바로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인간성
그 자체와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인간이 얼마나 약하다는 것까지를
포함해서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꿈이 없다면
그건 진정 사랑이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그리고 우리 인간 모두에게 거는 꿈은 약한 듯하다가도
때에 따라서는 옳은 일을 위해 목숨을 내던질 수 있는 용기,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요?
예수님의 꿈이 마침내 베드로에게서 이루어졌듯이
저희들에게도 이루어지소서.
《옳고도 아름다운 당신》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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